문정희 시인 -찻잎 덖을 때의 뜨거움과 깊고 높은 내공
문정희 시인과 만날 약속은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레스토랑이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기점으로 그의 오른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1층에는 빵을 팔고, 2층에는 스파게티를 파는 집이 있다.
냉동고에서 막 꺼낸 보성녹차처럼 찻잎 덖을 때의 뜨거움을 아스라한 내공 속에 가둬두고 있는 문정희 시인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듣는단 말인가. 궁금한 게 없는 기자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실은 아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기자가 불행한 것이었다. 말할 준비가 돼 있는 시인이면서 상대방과 더불어 문학적 시너지 효과를 최고조로 올리고 싶어 안달하는, 때로는 그것이 육체적 나이와 역행한다 싶을 정도로 겁 없는 정열 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시인이었다. |
문정희 시인과 김요일 시인은 먼저 와서 1층에 자리를 잡고 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맥주였다.
300cc 큰 컵에 따르면 딱 한 잔 나오는 맥주병이었다.
문 시인은 베이지색 니트로 된 헐렁한 상의를 입고 벽을 등지는 쪽에
앉아 있었다. 풍성한 퍼머 머리는 여전했다. 자리는 길가 쪽이었고,
밝은 유리창을 통해 행인들이 오가는 게 보였다.
문 시인은 호화로운 것은 호화롭게, 흐드러진 것은 흐드러지게,
비참한 것은 비참하게, 그러니까 제 본성을 가진 물상들이 제 본성을
따라 맘껏 뻗어가라고 뜨거운 응원가를 부르다 목이 쉰 사람 같다.
때로는 남이야 뭐라 하건 한바탕 흐드러진 문장과 시인의 열망으로
문학적 사치를 부리러 온 사람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저러나 냉동고에서 막 꺼낸 보성녹차처럼 찻잎 덖을 때의
뜨거움을 아스라한 내공 속에 가둬두고 있는 문정희 시인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듣는단 말인가.
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아마도 문 시인과 인터뷰, 기고문 받기를
10여 차례 이상은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자주, 그리고 가깝게 만나고 있는 터여서 궁금한 게 없다는
기분도 들었다. 궁금한 게 없는 기자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실은
아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기자가 불행한 것이었다.
몸에 열이 있었다. 문 시인과 김 시인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포도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거리를 탐색하고, 질문지와
노트와 청색 모나미 젤러펜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리고
문 시인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그 자리에서 깨져 나갈 것처럼
지끈거리고 있었다.
▶ 시란 뭡니까?
“하하하…… 참 내…… 나 참…… 기 죽일 일 있나…… 그냥
웃었다고 써 주세요. 시는 뭐, 나에게 있어서 건강 같은 것이에요.
시가 있어야 건강하니까.”
▶ 무슨 뜻입니까? 시가 있어야 건강하다니요.
“시가 있어서 건강하고, 건강하니까 시를 쓸 수 있는 거죠.
나에게 시는 철학인가 하면 과학에 가깝거든요.
시와 건강이 동떨어진 별개라고 착각할 뿐이죠. 이거는
선문답이 아니에요. 시는 언어인데요, 언어가 건강하지 않으면
삶도 몸도 건강하지 못하게 돼요.”
▶ 왜 시를 씁니까?
“배운 도둑질이 그거밖에 없어서요. 요즘에는 그래요. 처음에는
제일 재미있는게 시였거든요. 그래서 썼고요. 지금은 내가 하는
거 중에서 시를 제일 잘 하는 것 같아서 시를 씁니다.”
아, 하인리히 뵐도 그랬다. “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라고.
그리고 “나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문 시인은 ‘배운 도둑질’을 말했는데, 뵐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 은행강도가 판사 앞에 붙들려 갔는데, 판사가 엄하게 추궁하자
강도는 “그 짓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시인과 강도는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시인은 맥주와 포도주를 좋아하는 강도다.
▶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라고요? 요즘 뭘 하고 계시는데요?
“유마경과 능엄경을 읽었어요. ‘비가悲歌’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최근에 제가 하는 생각은 그동안 홀로서기 위해 살아온 것 같아 좋고
그랬는데, 하나가 더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건 홀로 죽기입니다.
힘이 솟고, 자신감이 펑펑 솟아 나는 기분으로 ‘비가’를 쓰고 싶습니다.”
시가 건강한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시인으로서 인생에 절정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문 시인이 ‘비가悲歌’를 쓰고 싶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대여, 절정에 서 있을 때는 건강한 비가를 쓰라.
그런 뜻인가. 슬퍼할 힘이 있을 때 슬퍼하라. 그런 뜻인가.
말꼬리를 잡아서 되묻는 것이 인터뷰의 룰이지만, 끈기를 발휘하기
에는 머리가 너무 아팠다. 문 시인의 대답이 강렬했기에 더욱
아팠다.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고 오지 않은 게 후회됐다.
▶ 지금 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시 쓰는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뜻은 시 쓰는 일 말고도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신다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지금 하고 계시는 일들은
어떤 일들인가요.
“사는 생활은 단순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컴퓨터 앞에 앉죠.
계절적으로 볼 때는 이맘때쯤에 외국에 나가기도 하는데 지금은
계획이 없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가 봐요.
지금 독일과 미국에서 제 시집이 나오거든요. 기분이 충만해요.
독일에서 출간될 책은 전집에 가까운 분량이고요, 미국에서 나오는
것은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를 번역한 것이에요.
그 현장에 몸이 안 가더라도 좋더라구요.”
문 시인은 평소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는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좋은 의미로는
이번 기회에 가슴에 있는 말들을 막힘 없이 얘기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분위기 조성을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좋은 의미로는 그저 술맛이 난다는 뜻이었다.
나쁜 의미로는 정상보다는 비정상으로 몰아가서 튀고 싶다는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튀는 것이 권력이 되는
트렌드가 세상을 횡행하고 있는 것을 문 시인은 은근히
패러디하고 있었다.
▶ (김요일) 아까 말이에요. 액세서리와 머플러를 얘기할 때는
문 시인께서 눈빛이 행복해 보이셨는데, 지금 시를 얘기할 때는
그보다는 복잡한, 여러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1965년 진명여고 3학년 때, 시집 『꽃숨』을 낼 무렵. |
“보성에서 어렸을 때 같이 자랐던 조카뻘 되는
여인이 찾아왔는데 신문에서 보던 문정희는
어디로 가버리고 보성 문정희가 나와 버렸네요잉,
하더라고요. 액세서리를 얘기하셨는데, 나는
액세서리 철렁거리는 문정희를 좋아해요.
장신구를 좋아해서 너무 많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장신구들이 섬뜩하게 싫어져서 제가
너희들은 ‘번뇌의 뼈’들이다, 하고 말해버렸어요.
그것들을 몸에 붙이고 나갔을 때의 허세와 과장과
허영심이 떠올라서 너무 싫었어요. 다 내버렸지요.
그래도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제 모든 시에는
과장과 허세가 있어요. 팩트가 아닌 것도 많아요.
나는 한계령의 눈에 갇힌 적도 없고, 나를 괴롭히는
시어머니도 없습니다. 시와 시인을 동일시하는
경향 때문에 일부 독자들이 오해하는 수가 생기지만요.”
미당 서정주 선생께서 “야, 하늘 아래 네가 있구나”
▶ 시가 중요합니까, 남자가 중요합니까?
“사실 남자도 중요해요. 그런데 내 삶은 시가 더 중요하게 살아버린
것 같아요. 남자는 중요하다기보다 사랑스럽죠. 앞으로는 당연히
시보다 남자를 더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자꾸 나보고 정신차리라고 해서 기분 나빠 죽겠습니다.
이쯤 해서 연애 감정을 쿨하게 버리고 지뢰를 깔아 놓은 상태로
위장 은퇴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싸가지 없는 젊음이 좋습니다.
포도주와 우정은 묵은 것이 좋다고 하는데 젊은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 생긴 친구를 불신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죠.”
▶ 문 시인에 대해 한 평자는 “존재 자체가 유혹처럼 살아가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은퇴를 생각하십니까?
“위장 은퇴라니까요. 아무튼 현역으로 뛴다면 나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할까봐 그렇습니다. 한국에는 빤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승리하고
있으니까요.”
▶ 살인자도 시를 쓰고, 살인자도 시를 음미할 수 있습니까?
“그럼요. 더 그럴 거예요. 너무 윤리의식으로만 보는 게 아니고,
때때로 모험과 위험에 도달하여 다시 극치로 간 탐미주의에 시는
있으니까요. 시는 마음의 고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 시의
해석 중 많은 걸 놓치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엔 얼마나 많은
살인자들이 살고 있는데요.”
▶ 최근에 전수안 대법관이 취임사에서 문 시인의 시 「먼 길」을
인용했더군요.
“그날 아침에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시를 다시 읽어보니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이라고 돼 있더라고요. 하하하.”▶ 지금까지 내신 시집이 10권이 넘죠?
“창작 시집만 11권입니다. 선집까지 포함하면 열대여섯 권쯤 될 거예요.”
▶ 그 시집들을 문학적으로 시대 구분을 해주실 수 있겠는지요.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질 경우 어떤 시인들은 “그것은 평자들이 할 일
이지 내가 내 시를 분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답을 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문 시인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자신의 시적 이력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기자는 이럴 때 시인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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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두번째 시집(『꽃숨』1965, 『문정희 시집』
1973)은 젊은 날의 감성이 많이 드러나 있는 작품들
입니다. 시대와 제한된 자유에 대한 갈증 같은 것들이
있지요. 지금은 저를 서정시인이라고들 하지만요,
그때는 참여까지는 아니라도 시대에 대한 발언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시집인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는
뉴욕에서 2년을 지내고 나서 낸 시집입니다.
본질적인 구도, 삶에 대한 예찬이 들어 있습니다.
나이도 30대가 됐던 무렵이고요. 다음 시집부터는
여성 문제라든가, 삶의 덧없음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90년대 중반에 『남자를 위하여』(1996)에
이르면 주제가 뚜렷해지기 시작합니다.
시대에 대한 비판도 강해집니다. 남성은 동물적 힘의
확대에만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았고, 여성은
상업성에 휘말린 외모 지향적 모습 등 반생명적 사회
현상을 보인다고 회의하는 시들입니다.
그후 『오라, 거짓 사랑아』(2001)는 시간에 대한 가변성,
생명의 문제에 천착했고,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2004)는 생의 열정 혹은 어떤 생명의 본질을 얘기했던 것 같아요.”
마치 준비된 것처럼 문 시인은 죽 이야기했다. 시인에게 삶의 이력서를
쓰는 일은 언제나 멋쩍은 일이면서, 해놓고 나면 고칠 부분도 많고
후회될 사항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 시인은 거침이 없었다.
적어도 거침이 없어 보였다. 언제든지 “지금이 컨디션 최고입니다”라고
말할 준비가 돼 있는 시인이면서 상대방과 더불어 문학적 시너지 효과를
최고조로 올리고 싶어 안달하는, 때로는 그것이 육체적 나이와 역행한다
싶을 정도로 겁 없는 정열 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시인이었다.
▶ 앞으로도 어떤 변모가 있겠다 싶은 대목은 없습니까?
“있지요. 삶을 미세한 국면이 아니라 좀더 크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시를 통해서 크게 생각하고 사랑하고 끌어안고 싶습니다.
언어도 민감하고 정확하게 바뀔 것 같고요.
요즘 시에 대한 컨디션이 좋아요. 세상을 많이 돌아다닌 후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시를 쓴다는 행위가 단순한 게 아니라 엄청난 것이라는 걸 저는
봤어요.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로서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발견이 기쁘고 좋아요.
내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미당 선생께서 저를 보고
“야, 하늘 아래 네가 있도다.” 하셨거든요.
그때는 상대평가인 줄 알고 그냥 기뻐했는데, 이제 그 말의 실감이
와요. 오로지 유일한 존재로서 나를 느끼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표현이 어느 정도 되는 국면에 내가 늙기 전에 와 있어요.
기분이 그래요. 겸손하지 못하죠?”
▶ 오만하십니다.(웃음)
“그래요. 난, 겸손하고 싶은데…… 그러나 겸손이라는 덕목에
공모하려고 너무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여성시인―사시사철 살아 있는 귀뚜라미
▶ (김요일) 미당 선생이 “야, 하늘 아래 네가 있도다”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문학적으로 어떤 절대적 평가를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니라
젊은 여성 제자에 대한 기분 좋은 호감의 표시 쪽 아니었을까요?
“그때도 내가 통통했었나 봐요.
선생께서 술에 취해 “네가 보리를 기르면 누구
것보다 알이 통통할 것같고, 네가 채소를 키우면 누구 것보다 더 파릇파릇할 것 같다”고
하셨거든요. 50대 남성으로서 나에게 젊은 생명력 같은 것을
느끼셨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미당 선생은 당시에 젊은 연애감정을
끝내고 나온 초로의 느낌이셨어요. 연애 감정이라기보다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제자를 대하듯 하셨지요. 남성으로서 모습을 보이려 하신
적은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도망갔을 겁니다.”
▶ 왜요?
“저는 거칠고 젊고 장래성 없는 남자에게 눈이 갔어요.
돈이 많거나 유명하거나
권력 있는 남성에게 마음을 기울인 적은없어요. 고향인 보성에 여름 방학 때 호남선을 타고 가면 유학간
남학생들이 줄줄이 쳐다보는데 저는 갈치장사 아들, 배우 되려는
총각이 더 좋아 보였어요. 한
번은 이탈리아에 갔는데 곤돌라 젓는 남자가 너무 잘생긴 거예요.
스웨터를 느슨하게 입고 있는데 왜 무비 스타가 안 되고 곤돌라를
젓고 있는 것이냐고 막 따졌다니까요.
동행했던 인도 봄베이 대학 교수가 남편에게 이르지 않을 테니
정신을 차리라고 하더군요.”
▶ (김요일) 문 시인의 작품을 보면 ‘키 큰 남자와 팔짱을 끼고 싶다’
(시 「키 큰 남자를 보면」 중)는 표현도 있잖습니까.
저 같은 남자는 어떡하라고요.
“그 시에서 키 큰 남자는, 센티미터가 긴, 멀대 같은 남자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아시죠? 모델은 앤디 더글라스라는 인류학 공부
하는 미국 녀석이에요. 김지하와 인삼을 좋아하는 녀석으로 내 시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아이오와 대학에서 만났지요.
어느날 걔랑 걸어가다 떠올라 쓴 시예요. 이런 얘기는 처음 하는데……
내 남자(독자)들 다 우두둑 떨어지면 어떻게 해. 사실 그 녀석
전혀 매력없는 애야. 근데 술 먹고 이렇게 막 얘기해버려도 되나.”
▶ 지금 얘기 막 해버리시는 것 하나도 없거든요.
“에이 모르겠다. 내일도 태양은 뜰 테니까. 근데 자신감 같은 것은
확실히 있습니다. 위험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너무 정답만 얘기하니
답답할 지경이에요.”
문 시인은 약간 취한 것 같기도 하고, 혹은 그냥 취한 척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문 시인은 포도주를 넉 잔 마신 상태였고, 창밖
행인들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빗방울은 굵어지고 있었다.
문 시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부를 말해 버리고 싶은 욕망과,
그래서는 곤란하다는 자제력 사이에 내부 전투가 벌어진 셈이다.
뭔가를 고백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고백해버려, 하고 귓바퀴에
계속 속삭여대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문 시인은 자신의 말을 잘 정제해서 인터뷰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분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경험에 따르면, 대개 인터뷰 당하는 상대방의 얼굴이
화끈거리고, 인터뷰를 한 기자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이를 갈게
되는 순간에 겨우 한 방울의 진심이 밝혀지고, 독자들은 정보의
쓰레기더미 속에서 바야흐로 읽을 만한 인터뷰를 만났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자와 인터뷰 상대가 서로 덕담이나 주고 받은 인터뷰는 그야말로
스프 안 넣고 끓여놓은 맹탕 라면이 퍼져 버린 것이나 같다.
아무리 머리는 아프지만 맹탕을 독자들께 제공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 지금까지 낸 시집 중 독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읽어야 하는 시집은
뭡니까?
“첫번째에서 여덟번째 시집까지를 엮은 시선집 『어린 사랑에게』,
그리고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를 보면 되지 않을까 해요.”
▶ 시인으로, 특히 여성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너무 좋은 거 같아요. 뭔지는 몰라도요. 특히 여성시인으로 살아
간다는 것은 사시사철 살고 있는 귀뚜라미로 사는 것입니다.”
문 시인은 이 대목에서 활자로 옮기면 절대 안 된다면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
했기보다는 자체 검열로 삭제한다.
이른바 ‘작성자께서 지우셨습니다’,다. 만약 그대로 활자화할 경우
‘여성시인들이’ 우리를 잡아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민족주의는 폭력
▶ 손목에 아주 특이해 뵈는 시계를 찼습니다.
“이거요? 테크노마린 시계예요. 스포츠 시계에다 다이아몬드를
박은 겁니다. 보헤미안과 부르주아가 만난 보보스 시계의 대표적인
상표지요.”
▶ 오른쪽 손목에 찬 팔찌는 어디서 샀습니까?
“일본 디자이너 것이에요. 23년 전 뉴욕에서 샀지요.
재클린 오나시스가 드나든다는 버그돌프 굿맨이라는 백화점에
갔는데 내 돈으로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제일 싼 것이 이거더라고요.
이게 수갑입니다.”
▶ 예? 수갑 만들 때 쓰는 쇠로 만든 장식 팔찌군요.
근데 왜 수갑을 차고 다니세요?
“간통죄와 연관짓지는 마세요. 하하하. ”
▶ 최근에 받은 문학상들을 역순으로 열거해주십시오.
“별로 못 받았어요. 작년에 마케도니아 올해의 시인상을 받았고,
그 전에 현대불교문학상, 그 전에 레바논 나지나만 문학상 공동수상,
그 전에 정지용 문학상, 그리고 천상병시문학상, 동국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기뻤던 일 하나는 이화여고 120주년을 기념해서 이화동산에
유관순 동상이 섰는데 뒷면 벽면에 제 시가 새겨지게 됐습니다.
20여 년 전에 쓴 「아우내의 새」라는 장시 중 서시 부분이 새겨집니다.”
‘풀꽃 하나가/ 쓰러지는 세상을 붙들 수 있다// 조그만 솜털 손목으로/
어둠에 잠기는 나라를/ 아주 잠시/ 아니, 아주 영원히/ 건져 올릴 수
있다// 풀꽃 하나, 그 목숨 바스라져/ 어둡고 서러운 가슴에/ 별로 떴다
// 꺼지지 않는 큰 별로 /역사에 박혔다.’
▶ 상도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도 생기시고, 항상 중심에 계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항상 아웃사이더였어요. 저는 문단의 제도와 조직에
큰 관심이 없고 굉장히 허술하고 그렇습니다.”
ⓒ2004년 10월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시인페스티벌>에서 <올해의 베스트 시인상>을 받았다. |
▶ (김요일) 시인은 모두 아웃사이더 아닌가요?
“그렇진 않아요. 학교, 출판사 같은 것을 통해 중심을 형성하는 분들이
있지요. 한국 사람들은 조직과 출신지방, 학교 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패거리 사회의 전형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용해보지 못했습니다.
노하우가 없는 게 좋은
겁니다.”
▶ 원시적인 생명력 같은 것,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을 감수성 같은 것,
정글 속에 갇힌 비안개와 암컷의 울음이 가득한 것만 같은 시 구절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저한테는 짝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야…… 김광일, 너무 이러지
말아요. 뭘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요. 나는 그냥 여기 있을 뿐이에요.”
자칭 ‘정신적인 부르주아 시인’
일행은 이 대목에서 두 병째 포도주를 비워가고 있었다.
필자는 맹세코 한 모금도 안 마셨다.
문 시인과 김 시인, 두 시인들이 마셨다. 포도주 향을 맡기 싫었다.
머리는 아직 지끈거렸고, 몸은 전체적으로 공중에 붕 뜬 듯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 요 깔고 그 자리에 눕고
싶었다. 그러나 문 시인의 답변이 내 허리를 곧추세워 주었다.
▶ 연애하고 싶습니까. 누구랑 하고 싶습니까.
“뻔한 질문을 하는 기자는 아니시죠? 그런데 나 졸업하고 싶어요.
ooo하고 연애하고 싶다, 이러면 못 쓸 거죠?”
▶ (김요일) 문 시인의 아버님은 대단한 한량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 남편, 아들, 이렇게 세 사람의 남성들을 서로 비교하듯
설명해볼 수 있겠습니까.
“왜 오늘따라 남자 이야기만 하지…… 나 남자 없는데…… 아버지는
토호였고 부자였어요. 한량이었고 아주 좋은 분이었죠. 내 가치관
형성의 기본이 된 분입니다. 부실한 것을 못 견디는 분이었습니다.
내가 열네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술쟁이였기에 간경화를 앓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 시에 못 쓰고 있습니다.
남편은 하도 많이 쓰고 입으로 물어뜯고 해서 됐고……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많이 사랑했고 희생했던 대상입니다.
미국에서 변호사가 되어서 세속적 보상을 해주었던 아이입니다.
어떤 한 남성과 살면서 오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결혼이
모순과 문제를 안고 있어도 그 중 낫기 때문에 고수하는 것입니다.
인내를 지불하고 살았지만 최근 아이들을 보면서 그 지불의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여성시인이라는 허황한 이름 하나 걸고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지요…… 그런 것이 싫어 많이
인내하고 견뎌냈지요.”
ⓒ생일날 가족과 함께(2002). |
▶ 욕심이 참 많으십니다.
“인정합니다. 나는 항상 최고 의식이 있습니다. 내가 인정하는
최고가 좋아요. 저는 하나밖에 없는 것을 좋아해요.
그것 때문에 많이 불행하기도 했죠.”
▶ 선배 시인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미당이죠.”
ⓒ미당 서정주 시인 팔순 때 함께 찍은 사진. 미당 내외분과 시인 황명, 가수 송창식의 모습이 보인다. |
▶ 미당 빼고요.
“저는 비교적 독서를 하는 편이에요. 막 밤낮으로 책을 읽어요.
쉼보르스카, 옥타비오 파스, 요셉 브로스키, 토마스 트렌스 트뢰머 같은
시인을 좋아해요. 공부하지 않고 영감에만 의존하는 시인은 싫어요.
이번 답에는 한국 시인을 일부러 피했어요.”
문 시인은 문득 《시인세계》에 실릴 사진을 고르려고 앨범을 뒤졌던
이야기를 했다. “난 말이에요, 객석에 앉은 사진은 없고, 전부 무대에 있는
사진뿐이에요. 이젠 꼴도 보기 싫어요.”
항상 조명 속에 서 있었던 화려한 사진들이 이제는 공허하다.
문 시인은 지금도 그렇게 패셔너블할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공허하다고 했다. 자칭 ‘정신적인 부르주아 시인’인 문정희 시인은
생머리가 아류 같아서 30대 중반 이후 퍼머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문 시인은 시종 귀중한 답변들을 들려 주었으나,
그에 비해 질문들은 너무 엉터리였다. 그 뒤로도 여러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나 자체 검열로 모두 삭제한다.
대답보다는 질문이 함량미달이었다.
/ 김광일
서울대 불어교육과 졸업.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 논설위원, 문화부장 역임. 현재 편집국 부국장.
저서
『우리가 만난 작가들』 『책을 읽은 다음엔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간지럽고 싶다, 한없이』『시보다 매혹적인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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