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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건봉사, 그 폐허 / 나호열

by 丹野 2012. 3. 30.

 

 

 건봉사, 그 폐허 / 나호열

 

 

  온몸으로 무너진 자에게 또 한번 무너지라고
   넓은 가슴 송두리째 내어주는 그 사람
   봄이면 이름 모를 풀꽃들에게 넉넉하게 자리 내어주고
   여름에는 우중첩첩 내리쏟는 장대비 꼿꼿이 세워주더니
   가을에는 이 세상 슬픔은 이렇게 우는 것이라고 풀무치, 쓰르레미, 귀뚜라미
   목청껏 울게 하더니
   겨울에는 그 모든 것 쓸어담아 흰 눈으로 태우는
   건봉사, 그 폐허
   나도 그에게로 가서
   그대의 폐허가 되고 싶다
   아무렇게 읽어도 사랑이 되는
   사랑을 몰라도 눈물이 되는
   바람의 집
   그대의 종이 되고 싶다

 

 

 

 

 

 

 

 

 

 

  

                                                  작년 봄, 만첩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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