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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말과 글 그리고 자부심을 획득한 1990년대 한국의 여성시

by 丹野 2006. 3. 9.

 

 

말과 글 그리고 자부심을 획득한 1990년대 한국의 여성시

 

정효구(문학평론가, 충북대 교수)

 

1. 문제를 제기하며

 

본지에서 '여성시 특집'란을 별도로 마련하였지만, 사실상 단순한 성의 구분에 따라 여성시를 별칭하고 그들의 시를 따로 모아서 다루는 게 어색할 정도로, 지금 이 땅의 여성시는 남성시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양과 질 양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1990년대 한국시단의 여러 가지 특징 중, 이와 같은 여성시의 양적인 확장과 질적인 향상은 1990년대 시단을 논의할 때, 맨 앞자리에서 논의되어 마땅할 만큼 중요한 항목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미 1990년대 전반기에 ‘솟아오르는 여성 시인들’이라는 글과 ‘해방 후 50년의 한국여성시’라는 글을 쓴 바 있거니와, 그때와 비교하더라도 이제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한국여성시는 한 단계 더 발전하며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과 관련해서 1990년대 한국여성시단은 이 땅의 20세기 한국시사가 남성의 시사로 독주하는 것을 막아준 아주 의미깊은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다. 1990년대 한국시단에서 여성 시인들이 활동한 것을 제대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20세기 한국시사를 쓰면서 여성시를 부록같은 존재로 다룰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시사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은 ‘애비’로 상징되는 남성들이 독주하며 성공(?)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승자였다. 언어로부터 육체적 조건 그리고 사회적 제도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은 하나같이 그들 편이 되어준 세상 속에서 자유자재로 헤엄치며 여성들 앞에 군림할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 여성일반은 물론 여성시인들 역시 타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깊은 소외감에 시달렸다. 문자와 말들이 남성들에 의하여 독점되었고, 물적 토대와 경제적 구조가 남성 위주로 전개되었으며, 여성을 사회적 존재로 인정해주기를 거부하는 제도와 관습 속에서, 여성일반과 마찬가지로 여성시인들 역시 자기자신을 표출하는데 엄청난 억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에는 『또 하나의 문화』,『여성과 사회』등을 중심으로 여성문화운동이 내실 있게 전개되기 시작하였고,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의 등장과 더불어 타자화된 존재의 중심화가 서서히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도 높아지기 시작하였고, 여성들의 경제적, 사회적 위상이 높아질 만한 물적 토대가 마련되기 사작하였으며, 대가족제도의 해체와 더불어 여성들의 주장이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낭만적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의 현모양처상이 얼마나 커다란 허구의 산물인가를 직시하게 되었으며, 뭐니뭐니해도 여성들의 자의식이 여러가지 여건에 의해서 강하게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를 더 제시할 수 있으나, 거칠게 말한다면 경제적. 물적 토대가 마련되고 정신적. 의식적 자각이 함께 맞물리면서 궁극적으로 여성들은 ‘자아각성’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자아각성! 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가? 나는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자아각성을 하는 데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약 350만년이 걸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직도 여성들의 자아각성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와 있지 못하며, 여성들의 자아각성을 인정하는 남성들의 의식 수준 또한 만족할만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는 가히 여성들의 ‘자아각성’이 역사상 최고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아각성이란 ‘나도 존중받을 만한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일이며, ‘나도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하는 사건이며, ‘나도 사회적 존재로 책임과 의무 속에서 당당히 발언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다’는 공적 자아의 확립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더 요약해서 말한다면 ‘나는 육체적, 정신적인 자유인이다’라고 외치며 선언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여성들의 이와 같은 변화는 고스란히 여성시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1990년대에 들어와 한국의 여성시인들은 어떤 면에서 장족의 발전상을 보여준 것일까? 그 점을 아래에서 몇 가지로 나누어 점검해보기로 한다.

 

2. 1990년대 한국 여성시의 발전상

첫째, 1990년대 한국의 여성시인들은 말과 글을 되찾았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남성의 전유물처럼 되었던, 그리고 남성언어에 짓눌려 있던 여성의 언어를 찾아내게 되었다는 뜻이다. 언어란 무엇인가, 적어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말과 글을 찾아내었다는 것은 그가 확실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당당히 발언할 수 있는 자신감을 획득했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그리고 여성의 말과 글을 억압하고 경멸해왔던 남성은 물론 여성 자신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대등하게 사회적 존재로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말과 글을 찾은 여성시인들은 여러 가지 창구로 그들의 내면세계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시집, 기성문예지, 새로운 동인지, 문예아카데미 등의 문화교실 프로그램 등 그들은 뭔가 통로를 물색하거나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통하여 나라는 존재를 말과 글 속에 담아 표출하였다. 그럼으로써 1990년대 한국시단에는 여성시인들의 등단이 어느 때 보다도 양적으로 팽창되었고, 이전에 등단한 여성시인들의 새로운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그런 것의 한 현상으로서 ‘아줌마 시인’이라고 불리우는 일군의 여성 시인들이 대거 진출하기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아줌마 시인들’의 출현을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우습게 바라보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의 그와 같은 열의와 출현이 가진 여성사적, 사회사적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을 포함한 이 땅의 여성시인들은 이제 말과 글을 되찾아 그들의 시쓰기를 단순한 자기충족감의 차원을 넘어선, 진정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행위로 발전시켜 나아갔다. 나는 이들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관심영역을 넓히면서 강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들의 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를 건다.

그런데 여성시인들이 말과 글을 찾았다는 것은 단지 그들이 말과 글을 찾았다는 사실 자체에만 그 의의가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시인들은 1990년대에 들어와 한편으로는 남성의 언어라고 여성들의 접근을 금기시했던 소위 남성언어의 영역으로 과감하게 돌진해 들어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동안 여성언어라고 평가절하되었던 책상 밑의 언어들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적극 발굴해내었다. 이제 우리 시단의 여성시인들이 쓰는 시를 보면, 그들의 이력을 가릴 경우, 누구의 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보편적 언어의 획득에 성공하였다. 방금 나는 ‘보편적 언어의 획득’이란 말을 사용하였거니와, 이것은 어떤 말도 불법화되는 일없이 그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편견없이 수용할만한 여력을 마련하였다는 뜻이다. 남성에게 빼앗겼던 언어를 찾는 것은 물론, 남성언어의 횡포 때문에 주변으로 내몰렸던 여성의 언어를 발굴해내는 일, 그 가운데서도 여성학자인 오숙희의 수필집 『그래, 수다로 풀자』의 책 제목이 이미 암시하듯, 변방으로, 그야말로 오염시되면서 내몰렸던 여성의 언어가 당당하게 그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고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말하자면 남성언어의 횡포에 의하여 수다로 평가돼 왔거나 접시물이 엎어지는 행위로 인식돼왔던 소위 우물가의 여성언어가 더 이상 쓰레기와 같은 혐오의 대상 내지는 주변부적 성격을 띠지 않고 당당하게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90년대 한국시단의 여성시인들은 진정 말과 글을 되찾은 세대로 평가되어 부족함이 없다.

둘째, 1990년대 여성시인들은 여성성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데 성공하였다. 지금까지의 여성사 및 여성시사를 돌아보면 그 첫 단계는 몇몇 뛰어난 여성들이 남성들의 지배질서에 편입되어, 홍일점 의식을 가지고 귀부인 대접을 받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초보적이고 유치한 단계일 뿐, 진정한 여성해방을 가져오는 데는 근접할 수 없다. 그 이후 여성들은 두 번째 단계로 남성중심주의 내지는 남성지배질서에 강한 불만을 품고 비판과 고발 그리고 항의의 태도를 거세게 드러내었다. 이 단계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을 적대시하며 그들의 시선을 외부로만 향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외부의 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그 적의 실체가 너무나도 강력하다는 사실 앞에서 일단 그들과 관련된 문제점에 대하여 고발, 비판, 저항, 야유 등의 태도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 시단에서 이와 같은 여성시의전개는 주로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전반부에 이루어진 것 같다. 작고한 고정희를 비롯하여 김승희, 문정희, 신현림 등 많은 여성시인들이 이런 단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여성시는 이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한편으로는 남성지배질서에 비판과 경고를 가하고 항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성의 고유한 가치를 재발견하기 시작하는 데로 나아갔다. 이처럼 여성성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아주 커다란 사건이거니와, 이것은 여성이 여성됨에 대하여 자존심과 자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는 의미를 띤다. 이런 단계를 가리켜 서양에서는 ‘female'단계라고 칭하는데, 우리 여성시는 1990년대, 그 가운데서도 1990년대의 후반기에 들어와 이 단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제 여성들은 일차적으로 여성의 몸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며 그 숨은 가치를 적극적으로 들어올리게 되었으며, 앞서 지적했듯이 여성의 말을 온전한 언어로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여성의 일과 노동을 재평가하기 시작하였으며, 더 나아가 여성성이 절대의 순수성을 가진 존재의 근원이라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어머니를 모범적인 대안으로 내세워 여성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와『여성해방출사표』를 출간한 고정희, 여성성을 살림의 표상으로 읽어낸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을 출간한 김혜순, 여성 속에서 이른바 ’호랑이성‘을 찾아내며 ’늑대와 함께 가는 여성‘이기를 주장한 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을 출간한 김승희, 여성의 몸을 위악적으로 해방시키려고 한 시집 『트렁크』를 출간한 김언희, 여성의 몸 맨 아래쪽에서 절대의 순수 공간을 찾으려고 한 시집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를 출간한 김정란과 시집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의 노혜경, 여성성을 남성성보다 윗질의 것으로 평가하려고 든 시집 『햇빛 속의 호랑이』를 출간한 최정례, 여성성을 완벽한 세계로 인식한 시집 『이 완벽한 세계』를 출간한 박서원 등의 예가 다 여기에 속한다. 여성성의 제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여성을 온전한 존재로 인식하고 여성됨에 자존심과 자부심을 느낀 이 단계의 출현은 1990년대 한국여성시가 장족의 발전을 이룩한 대표적인 예이다. 여성은 이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 자체로 남성과 더불어 완벽한 존재이다. 더 이상 여성의 몸과 정신을 가해하거나 자학하지 말기를......

셋째, 1990년대 여성시인들은 시에서 지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시에서 지성을 획득하였다는 것은 시가 무엇인가라는 철저한 자의식 속에서 그들의 시작행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시인들은 ‘여성스러움’이라는 어떤 괴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시인의 이름을 가리고 보더라도 이것이 여성시인의 작품이라는 걸 금방 눈치챌 만큼 규격화된, 강요된, 길들여진 여성적 특질이 나타나곤 하였다. 이것은 분명 여성 자신의 반지성적 태도이기도 하지만, 여성을 불리한 환경 속으로 몰아넣은 외부적 요인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이처럼 여성들이 ‘여성스러움’ 이라는 어떤 망령에 빠져 허덕인다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그들의 자의식이 부족했음을 반영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꼭 1990년대라고 못박아 한정지을 수 없을지 모르나 1990년대를 전후하여 여성시인들의 시쓰기에 대한 자의식은 이전보다 한층 대단해졌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시쓰기는 소박한 자기감정의 표현이나 한풀이의 차원, 더 나아가 여성다움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행위가 아니다.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자신들의 시쓰기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왜 시를 쓰는가, 그리고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에 대하여 자의식의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시쓰기는 완전한 프로정신의 실현과정이다. 이제 그들에게 시는 부업이 아니다. 시쓰기는 자신의 밥을 자신의 노동으로 벌고자 하는 것처럼 완전한 직업적 의식의 산물이거나 직업 그 자체이다. 이것은 이 땅의 여성들의 노동이 해도 그만이고 안해도 그만인 부업수준의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실현과 사회참여의 행위로서 프로의식을 갖고 이루어지는 것과 등가를 이룬다. ‘프로만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자의식을 가진 시인만이 아름답다’. 그리고 ‘시쓰기가 전인격의 참여행위인 사람만이 아름답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양상이 여성시인들에게서 본격적으로 드러난 게 1990년대 한국의 우리시단에서의 일이다.

넷째, 여성시인들은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해방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점은 바로 앞의 항목과 조금 중복되는 부분이지만, 따로 떼어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의도 때문에 항목을 달리 설정하였다. 그렇다면 여성의 육체와 정신을 해방시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여성의 육체와 정신이 함께 해방되었을 때 가능하다면, 1990년대 한국시단에서는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의 여성해방이 함께 시로서 구현되었다 지금까지 여성의 몸은 허약함의 표상이거나 부끄러움의 표상이었다. 더 나아가 여성의 몸은 오염시의 대상이거나 남성을 위한 도구성을 띤 것처럼 여겨지곤 하였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자신도 여성의 몸을 이와 같이 평가하는데 길들여져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육체는 억압과 왜곡된 평가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여성의 몸이 남성의 몸보다 외형상 작다는 사실, 여성이 자궁을 가졌다는 사실, 여성의 성기가 남성의 성기와 다르다는 사실,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의 목소리와 다르다는 사실, 여성이 유방을 가졌다는 사실, 여성에게 수염이 없다는 사실 등, 여성만의 고유한 육체적 조건이 차별이 아닌 차이의 한 형태에 불과하고, 더 나아가 여성의 육체적 조건은 남성의 그것보다 더 우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처럼 여성의 몸을 있는 그대로 차이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여성의 몸에서만 특별히 읽어낼 수 있는 새로운 의미를 적극 찾아가면서, 1990년대 한국 여성시인들은 여성의 몸을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데 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남성의 몸은 여성의 몸과 비교할 때, 딱 한 가지 면에서만 우월(?)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전쟁을 잘할 수 있는 근육질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남성인류학자로서 『문화의 수수께끼』를 쓴 마빈 해리스의 말이다. 나는 전쟁을 잘할 수 있는 그들의 근육질의 힘이 지배와 파괴의 역사를 만드는 원천이 되었음을 우리의 세계사 속에서 생생하게 접할 때마다 근육질의 힘이 가진 파괴성 앞에서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어차피 현실이란 힘의 역사이기도 하다면 현실적 효용성의 측면에서 근육질의 힘은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평화와 안녕을 추구하는 고상한 가치의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근육질의 힘은 높이 평가할만한 것이 되기 어렵다. 이제 여성들은 그들의 몸을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인정하고 자신있게 해방시켜야 한다. 일례로 여성들은 작은 발 콤플렉스에서 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여성이 발이 큰 것은 추함의 표상이 아니라 건강함의 표상이다. 여성들은 그들의 발을 해방시키지 않는 한, 남성과 대등하게 맞서기가 어렵다. 그러니 전족콤플렉스와 볼이 좁은 하이힐 콤플렉스로부터 여성의 발을 해방시켜라. 마찬가지로 여성의 몸 전체를 당당하게 해방시켜라.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니까.

바로 1990년대 한국시단에서 여성의 몸을 해방시킨 시와 시인들이 상당수 등장하였다. 여성으로서 자궁을 가진 사건(?) 앞에서 자존심을 넘어 자부심을 느끼는, 시집 『마음에 살을 베이다』를 출간한 이인원, 여성의 나체를 사진으로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 그 여성의 몸이 가진 신비에 압도당하는, 시집 『세기말 블루스』를 출간한 신현림, 여성의 음부를 바기날 플라워(vaginal flower)로 읽으면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해낸, 시작품 「바기날 플라워」의 시인 진수미,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과 달리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집이라고 읽어낸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을 출간한 김혜순 등이 그 예로 제시될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1990년대 한국시단에서 일부 남성시인들은 자궁을 갖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을 고백하였으며 여성의 자궁 앞에서 느낌표로 찬탄의 감정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지만 그 동안 여성의 몸은 남성중심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너무나도 형편없는 평가를, 그리고 부당한 평가를 받아왔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한다.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완전하거니와,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속의 모든 생명들이 그 자체로 완전한 것과 마찬가지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과감하게 여성의 육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그 속에 숨은 가치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기존의 남성중심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극복해버리라고 말이다.

다음으로 나는 1990년대 우리의 여성시인들에게서 정신의 해방에 골몰하는 모습을 본다. 이것은 앞에서 다룬 육체의 해방과 나란히 가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구분해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여성들은 그들의 육체를 감금시키고 경멸하는 데 이끌려 다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남성중심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강압 아래서 왜곡시켰다. 따라서 똑같은 사건과 현상을 앞에 놓고도,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으로 그것을 해석해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여성들은 그들만의,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대신, 불평과 불만만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고,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이등시민처럼 취급하는 데 길들여져버리고 말았다. 한 시대는 지배자의 입과 힘으로 진리를 유포시킨다는 것을 이제 의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여성들은 그 동안 지배자인 남성의 입과 힘으로 유포시킨 진리 앞에서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여성의 정신활동이 남성의 그것보다 낮은 수준의 것이라고 우겨댔고, 심지어 그들은 여성들이 정신활동을 유지할만한 자질이 있느냐고 의심하기조차 하였다. 그러므로 여성은 단순한 육체 덩어리 혹은 종족보존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성들이 남성 못지 않은 정신적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 여성들의 정신적 피폐현상이 남성지배이데올로기의 폭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여성들은 오히려 남성 이상의 고결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 뇌생물학적으로 보더라도 여성이 오히려 남성보다 진화된 존재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 등이 이야기되거나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이런 점과 맞물리면서 1990년대의 한국 여성시인들은 그들의 세뇌된 정신을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기 시작하였다. 기성의 진리에 대하여 그들은 강력하게 회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진리라는 이름의 명제를 전복시키는 데 참여하였다. 이를테면 ‘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 대신 ‘암탉이 울어야 알을 많이 낳는다’는 말을 창조하였다. 그런가 하면 ‘여자는 자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 대신 ‘자궁이 없는 남자는 불완전하다’는 말을 만들어내었다. 어쨌든 여성시인들은 다방면에서 그들을 옭아매고 평가절하앴던 정신적 폭력을 걷어치우고 그들의 자유로운 정신과 영혼을 창조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육체적 폭력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 정신적 폭력이다. 만 사람의 말이 쇠를 녹인다는 격언도 있듯이 진리라고 가장한 말들이 반복하여 확산되면 그 말은 주술적인 힘을 갖고 약자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다. 여성들이여, 그런 점에서 기성의 진리들에 대하여 가능하다면 항상 회의하고 따져 보기를..... , 자신도 모르게 품고 있는 생각들이 실은 당신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족쇄일 때가 너무나도 많을 터이니까. 1990년대 한국여성시는 바로 이런 정신의 해방을 드높게 꿈꾸었다. 고정희는 앞선 자리에서 『여성해방출사표』등의 시집을 통하여 과거의 역사를 재해석하며 여성들의 억압당한 정신을 해방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여 크게 성공하였으며, 이상희 역시 여성을 끝없이 소시민으로 전락시키는 이 땅의 정신적 폭력들을 고발하였고, 박서원은 누구보다도 과격하게 남성지배정신에 항의하였다. 박서원이 그의 시집 『아무도 없어요』에서부터 ‘애비없는 아이를 낳고 싶다’고 외치면서 정신의 해방을 부르짖은 것은 특기할 만하다. 여기에 일일이 예를 다 들 수는 없지만 1990년대 한국의 여성시인들은 아버지의 법칙 아래서 주눅들고 왜곡되었던 정신을 바로잡으면서 그들 자신을 온전한 한 인간으로 구축하려는 몸짓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열성적으로 보여주었다.

다섯째, 1990년대 한국여성시인들은 여성문제 이외의 측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앞에서 논의한 내용들은 여성들의 자아발견 내지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해본 것들이고, 이번 항목에서 논의할 내용은 이런 여성의 영역 이외에서 보여준 그들의 활동을 점검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다섯 번째의 항목에서 다시금 몇 가지 소항목을 마련하며 1990년대 여성시인들의 성과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 하나는, 1990년대 여성시인들이 과거에 여성적 주제라고 여겨졌던 작은 문제들로부터 아주 거시적인 문제들로 그들의 관심을 확대시켜 나아갔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상당히 현실적이고 또 보편적인 문제로 그들의 관심사를 확대시켜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대의 여성들이 가정만을 그들의 관심 및 활동영역으로 삼던 데서 벗어나 그들이 사는 사회 전체를 관심 및 활동 영역으로 삼으면서 보편적 인간으로 자기정립을 해보려고 노력한 점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은 가정문제에서부터 아주 큰 인류사적 문제에까지, 그런가 하면 내밀한 개인의 정서에서부터 아주 드높은 정신사적 문제에까지 관심을 확대시키고 그것을 체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아갔던 것이다. 수행승에 가까울 정도로 정신의 수행에 관심을 쏟으며 일정한 경지를 개척한 천양희, 한 인간의 비극적 인간조건 앞에서 자유의 경지를 숙명처럼 꿈꾸어온 유안진, 사회의 모순과 왜곡상에 격렬한 비판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보낸 문정희, 세상의 부조리성과 생의 부조리성 앞에서 극단적으로 고뇌하다 생을 스스로 마감한 이연주, 유장한 가락으로 민중사적 시각을 확보한 허수경, 인생론적 문제를 거시적으로 탐구해낸 홍윤숙, 인간의 노마드적 본성을살리고자 사회적 억압상을 과감하게 파기하고자 노력한 김승희, 일상성의 이면을 뒤집어보인 노향림과 김상미, 현대사회의 세속성을 고발한 이사라와 이원 등이 다 이런 방향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둘은, 여성 특유의 감각성을 경박함이 아닌 구체적 생동감의 실현으로 살려낸 시가 등장하였다. 이런 감각성은 추상화된 언어와 생각들을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일 듯, 귀에 들릴 듯, 표현해 내는데 크게 공헌하였거니와, 이것은 여성 고유의 자질을 아주 잘 살려낸 예라고 생각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부분에서는 단연 황인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시집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등을 통하여 감각성의 고유자질을 개발하는 데 큰 힘을 보태었다. 이 외에도 언어의 구체적인 감각성을 살려서 언어의 맛을 느끼게 한 시인으로는 황인숙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성미정, 이상희, 허혜정, 김혜수,이원, 김소연 등을 들 수 있다.

그 셋은, 슈르리얼리즘 시인이라고 부를 만한, 시창작 과정 내지는 상상력의 활동 과정에서 새로운 변모를 보여준 시인이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시는 많은 발전과 변화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면 그 상상력이 평면적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와 새로운 젊은 여성 시인 한 사람이 등장하였으니, 그가 바로 시집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와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의 시인 이수명이다. 이수명의 상상력과 창작방법 그리고 통찰력은 1930년대의 이상과 맥을 대고 있다. 나는 그의 이런 자질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이것은 한국여성시사에서 뿐만 아니라 남녀 시인들을 통틀어 한국시사 속에서도 소중한 부분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점이다. 이수명이 그의 시에서 보여주는 상상력의 신선함과 입체성, 그리고 예리한 지성의 작용은 우리의 여성시사를 풍요롭게 하면서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수명과 그 세목은 다르지만 이수명 이전의 김혜순이 보여준 상상력이 이 항목에서 논의될 수 있으며, 의미전달에서 약간의 불투명성을 노정하지만 박서원과 김정란의 상상력이 일면 슈르리얼리즘이라는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넷은, 일상서의 재인식 및 재발견이 특히 여성시인들에게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 여성시인들은 물론 남성시인들까지도 격동의 사건을 말하기보다 작고 잔잔한 일상성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여성들의 섬세한 감성과 관찰력은 이러한 일상성의 면면을 드러내는 데 더 적합하였고, 특히나 일상성에 누구보다도 매몰된 체험이 여성시인들에게 강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일상성의 재인식과 재발견은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었다. 일상성은 우리가 수용해야할 어떤 것이기도 하지만, 이세상의 온갖 모순을 그 속 갈피갈피에 끼워갖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한국의 1990년대 여성시인들은 그것을 일상성의 갈피갈피에서 털어보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재성찰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시는 이전에 다루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일상성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데로 나아가게 되었다. 시집『모자는 가면을 만든다』의 김상미, 시집『오 가엾은 비눗갑들』의 이선영, 시집『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의 이진명, 시집『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의 안정옥, 시집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의 이경림, 시집『비밀을 사랑한 이유』의 정은숙, 시집 『일기를 구기다』의 양선희 등 아주 많은 여성 시인들이 이 문제를 천착하였다. 일상성의 재발견 및 재인식할 수 있는 사회는 꽤나 안정된 사회이다. 그리고 꽤나 성숙한 사회이다. 그것은 바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일상의 연속이 우리의 삶임을 알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 다섯은, 여성의 야수성을 과감하게 표출한 점이다. 앞에서도 잠시 말한 바 있는 양과 늑대의 대비 속에서 저 먼 곳으로 추방당했던 ‘늑대’의 속성, 곰과 호랑이의 대비 속에서 역시 문제아로 낙인찍힌 ‘호랑이’의 속성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이끌어낸 것이다. 한 시대나 공동체는 그 시대와 공동체의 지배적 질서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그들이 위험하다고 여긴 존재를 영역 바깥으로 몰아내는 게 일반적이다. 여성들은 그동안 ‘늑대’의 속성과 ‘호랑이’의 속성이 여성을 여성답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세뇌당하면서, 그런가 하면 이런 속성을 발휘할 경우 지배자인 남성의 눈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염려하면서, 그들의 내면 속에 숨죽이고 있는 늑대와 호랑이의 속성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여성시인들은 토끼장의 평화보다 광야 속의 모험과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세계의 발굴과 표출에 힘을 기울였다. 그 대표적인 시인이 시집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의 김승희, 시집 『트렁크』의 김언희 그리고 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의 박서원이다. 야성은 남성만의 것이 아니라 여성을 포함한 인간 모두의 창조적 자질이자 자유를 꿈꾸는 인간들의 본질적인 욕망이다. 그것을 여성시인들이 당당하게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우리 시단의 한 모습이다.

 

3. 글을 마치며

 

1990년대 여성 시단은 대전환기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웠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의문제이다. 나는 앞으로의 시대가 남성 시인들보다 오히려 여성 시인들이 글쓰기에 더 좋은 여건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분명하게 자아각성이 이루어졌고, 말과 글을 되찾는데 자신감을 획득한 여성시인들은 그간 주변인처럼 맴돌면서 자신의 몸 속 깊은 곳에 멍울로 남겨놨던 덩어리들을 얼마든지 보편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시라고 하는 것은 덩어리를 갖고 있는 자에게 더욱 절실하며 동시에 적합한 장르이기 때문에, 그간의 삶을 비추어보면 남성시인들의 경우보다 여성시인들의 경우가 훨씬 할 말을 많이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음과 같은 부탁을 앞으로 21세기를 맞이하는 이 땅의 여성시인들에게 전하고 싶다.

첫째, 작은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있으나 큰 시인은 공부하며 자신의 사상을 창조하는 자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재주만으로도 시를 쓸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공부와 더불어 사상의 창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적 성장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는 분명 직관과 감성의 지배를 많이 받지만, 이것 이상으로 통찰과 해석 그리고 지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시단의 여성시인들이 큰 시인을 꿈꾸며 사유의 폭을 넓히기 바란다.

둘째, 여성문제를 보다 본질적으로, 현실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문제는 단순한 지적과 고발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실천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문제는 문제의 본질과 현실적인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주 사실적인 접근 방법으로 파고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여성문제는 남성을 비롯한 기득권자들의 양심과 도덕심 더 나아가 이해심에 호소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성문제를 그렇게 야기시킬 수밖에 없었던 물적, 정신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해부하듯 분석해내고 대안을 마련해야만 해결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여성문제는 공부와 사상적 토대의 마련을 필요로 한다. 실질적으로 여성문제(여성차별)의 근저에는 권력의 편중화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남성에게 그토록 엄청난 권력이 편중되게 돌아갔을까? 그 문제를 분석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권력의 원천을 인간의 욕망이라는 문제와 결부시켜서 생각하기 때문에, 제1권력을 이루는 것이 물리적인 힘, 제2권력을 이루는 것이 경제적인 힘, 제3의 권력을 이루는 것이 제도 및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제1권력은 인간의 목숨을 좌우하는 직접적인 힘이고, 제2권력은 지급자족 패턴이 깨진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생존과 생활을 좌우하는 직.간접적인 힘이며, 제3권력은 인간의 생활과 정신을 지배하는 직.간접의 힘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적나라한 인식을 통하여 여성문제를 풀어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앞서 말한 세 가지 사항을 기본적으로 항상 고려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여성시인들의 자아발견 내지 자아각성이 자아팽창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발견과 자아각성은 항상 자아해체로 이어질 수 있을 때 자아의 성숙을 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발견과 자아각성이 자아팽창으로 왜곡될 때, 그것은 또 하나의 단절된 장벽을 쌓는 일이다. 자아몰각의 상태만큼 자아팽창의 상태도 위험하다. 나는 우리 시단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아발견 내지는 인간으로서의 자아발견을 한다는 것이 그만 자아팽창으로 방향을 잘못 틀고 나간 경우를 보고 안쓰러웠던 경험을 갖고 있다. 자아가 팽창될 때 그들의 눈길은 깊어지기보다 천박해지고, 허심해지기 보다 탐욕스러워진다. 자아해체가 잘 이루어질 수 있을 때, 자아발견은 진정 참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넷째, 현대문명사 내지 인류사 속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위상을 적극적으로 탐색해내었으면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생태적 여성주의 같은 것도 그 한 예가 되거니와, 여성시인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특성을 잘 살려서 이 땅의 문명사 내지는 인류사를 고민해 나아가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본다. 여성시인들이 주변성과 지방성을 극복하고 인간사의 보편적인 문제를 책임감 있게 적극적으로 역사의 중심부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가치로서의 여성성과 현실로서의 여성성을 구분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가치의 측면에서는 여성 혹은 여성성이 윗길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의 측면에서는 남성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적지 않다. 가치와 현실 양자가 다 중요하기 때문에 이 점을 인식하고 여성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말은 예를 들어 가치의 측면에서는 어머니가 높이 평가되지만, 현실의 측면에서는 아버지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여성시는 이 양면을 함께 읽으면서 가치의 실현과 현실의 타개에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

끝으로 20세기는 물론 다가올 21세기는 더욱 더 인공의 시대가 될 것이므로 시 양식, 그 중에서도 여성시의 역할은 매우 커질 것임을 기대해 본다. 증권시장에서 전광판을 쳐다보며 눈이 충혈된 사람들도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수 밖에 없고, 네모칸의 빌딩 속에 갇혀 있는 회사 인간도 역시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조건이다. 나는 앞으로의 우리시, 그 가운데서도 여성시는 여성시의 가치를 잘 살려내어서 인공시대의 자궁이 없는 것과 같은 인간들에게 감동의 시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동은 전략의 영역이 아니라 진정성의 영역이다. 이러한 감동은 자연으로서의 성격을 띤다. 감동만큼 큰 권력이 없다면, 우리시, 그 중에서도 여성시는 앞으로 감동을 자아낼 만한 좋은 시를 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감동이란 정서적 차원에서 주검과 같은 인공의 사막 속에 자연이가진 새싹과 꽃 그리고 물기운을 안겨주는 일이다.

이제 말과 글을 찾고 여성으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회복하기 시작한 우리 시단의 여성시인들이 끝가지 분투하기를 빈다.

 

- 이 글은 계간 『시와 시학』여성시인 특집으로 게제된 정효구 교수(충북대,문학평론가)의 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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