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가는 길
-동해기행
나호열
변화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내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곡절 많은 몇 해가 지나갔다. 분칠을 해서 변한 것 인지 아니면 허물을 벗어서 변한 것 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세간에 몸을 두고 있으되, 정신은 변방으로 하염없이 떠밀리어 갔다는 점이다.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규격화된 질서로 부터 몸을 빼면 뺄수록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옥죄어오는 불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던 시간들 이었다. 그동안 많은 시를 읽었으나 시를 쓰지는 못하였으며 외로웠으나 그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어떤 몸짓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낡을 대로 낡아서 툴툴거리는 차를 달래가면서 악을 쓰듯 여장을 꾸렸던 것이 몇 번이었던가! 쫓기듯 떠났다가 쫓기듯 되돌아왔지만 나는 격포바다 노을을 만났으며, 정선 아우라지의 물빛, 새벽 내소사 숲길의 정적을 걷기도 하였으니 내다버린 발품은 헤아릴 길이 없다. 지난 몇 년 동안의 행보는 바람과 같이 정처 없으면서도 나의 모든 삶의 어떤 기간보다도 치열했으며 순수했다. 걸레처럼 육신을 현실에 문질러대면서 나를 미워하고 그리고 용서했다.
청간정
지난 해 여름, 글공부하는 친구들과 동해로 떠났었다. 정동진에서 바다를 보고 일출을 보면서 새벽에 나누는 커피 한잔의 낭만을 꿈꾸었지만 그보다도 고성 지나 건봉사와 속초 바로 위 청간정이 더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서울에서 동해로 가는 길은 여럿 있지만 홍천, 인제로 해서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는 길을 버리고 홍천에서 어론으로 빠지는 구룡령 길을 우회해서 동해로 가는 길을 나는 좋아한다.
너무 한적해서 눈물이 날 지경인 도로와 고갯길을 더듬어가며 나는 청간정을 찾았었다. 관동팔경 중의 하나였다는 과거 속의 정자, 나는 비오는 저녁 그 누에 올라 대책 없이 전개될 삶에 대해서 바다에게 물어 보았다. 막막하기는 바다도 마찬가지여서 바다는 말없이 오징어 배를 보여주었고, 인간의 노동을 가물거리는 오징어 배 불빛으로 보여 주었으며, 그 불빛은 처연한 눈물로 내게 돌아왔다.
그 다음 날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물어물어 건봉사에 들어갔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새롭게 조성한 멀끔한 절간이 아니라 광막하게 비어있는 폐허였다. 푸르게 잡풀이 이름 모를 풀꽃들을 피워내고 그 사이 사이로 빗줄기가 내리꽂히던 너른 공터에서 나는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몸과 마음을 낮추는 것… 그리고 그 해 여름이 가기 전, 타성처럼 내 입으로 들어오던 월급봉투와 결별했다.
건봉사
나는 친구들에게 비어있어 아름다운 건봉사와 청간정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들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서어서 모래시계의 추억과 고현정 소나무를 보고 싶어 했으므로 서둘러 그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초반, 고적한 어촌이었던 정동진에는 인공으로 찍어 만든 허위의 추억과 수다스러움만이 널브러져 있어 더욱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백복령을 넘어 정선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강릉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도 좋지만 처음 넘는 백복령도 숨이 막혔다. 아우라지에 도착했을 때 산으로 둘러싸인 고독이 내 마음 어느 한구석에서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 물과 저 물이 합치고 침묵으로 버티고 누운 돌멩이 몇 개를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길고 긴 강물과 동행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내 눈길을 받은 아우라지 돌멩이 몇 개가 제멋대로 굴러다니고 있다.
정선 아우라지
나는 지금도 여행을 꿈꾼다. 주마간산으로 이 곳 저 곳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계곡 물소리를 싫증나도록 듣고, 꽃이 벙글 면서 개화하는 순간순간을 끈기 있게 들여다보고 싶다. 밤이면 소쿠리로 가득 넘쳐나는 별들을 밤새도록 세고 싶다. 너무 숨차게 달려온 길을 될 수 있으면 천천히 되새김하고 싶다.
사람에 실패하고 낙향한 처갓집 하동 가는 길. 문득 차의 속력을 늦추자 주변의 사물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논둑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농부와 누렁소가 손에 잡힐 듯 거기에 있었으며, 화순 그 어디쯤에는 청청한 대나무 숲이 바람을 갈아엎고 있는 것이 보였으며…낙엽, 잔솔가지로 밥 짓는 연기가 사람 사는 마을이 어디쯤인가를 넌지시 일러주고 있었다. 아내는 꽉 쥐었던 손잡이에서 손을 풀어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엑설레이터에서 힘을 빼자 도착해야 할 곳이 아직 멀었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내가 도달해야할 곳을 이미 지나쳐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올 봄, 팔 년 동안 10만 킬로미터가 넘게 마음속을 맴돌았던 차와 이별했다. 이놈의 고물차, 버리고 말거야 속으로 되뇌이던 것이 몇 번 이었던가, 익숙해진다는 것, 길들여진다는 것, 그런 습관을 하루아침에 지워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손길과 눈길이 닿아 있는 이제는 퇴색해 버린 고물차는 혹시 내 자신이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시가 나를 벼리는 날카로운 칼날임을 알아차린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사람답게 만드는 것임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만일 이별을 해야 한다면 나전이나 통리같은 오지마을에 가서 해야 할 일이다. 쉽사리 가지도 못하겠지만 쉽사리 되돌아 올 수 없도록 싸리꽃 슬프게 핀 저녁쯤 눈물 거두고 싶다.
싼 웃음이 아니라 숯검뎅이 묻은 눈물을 시로 쓰고 싶다. 벼랑에 서서 뛰어내릴까 말까 망설이는 시가 아니라 백척간두 진일보를 외치며 아득한 벼랑 아래로 나뒹굴어진 참담한 비명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어느 날 문득 이 모든 추억들이 스멀거리며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보던 책을 덮어두고 오랫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던 휴대용 컴퓨터를 꺼내 들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손길이 닿지 않아 너무나 적요했던 내 마음의 조각들이 화면에 밀려오고 있었다. 어떤 것은 새벽바다의 암석에 부딪치며 하얀 포말이 되기도 하였고 어떤 것은 벌써 염전의 흰 소금으로 변해 가기도 하였다. 용케 버려지지 않은 시들이 여기 남아 있다.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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