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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세상과 세상 사이

아름다운 우리 말 「 아슴하다 」 / 나호열

by 丹野 2009. 11. 21.

 

                                                                     p r a h a

 

 

아름다운 우리 말 「 아슴하다/ 나호열 (시인)



  요즘 일상회화에서 많이 쓰이는  말 중에 ‘.~같아요’ 가 있다. “이 물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열에 아홉은 “~ 같아요“ 로 대답한다. 어떤 정서를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울 때, 또는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이 말처럼 유효한 답변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가끔은 이런 질문과 답변을 보고 들을 때 답답해질 질 때가 있다. 매사에 분별이 확실한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뭉뚱거리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지대로 어물쩍 숨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자기 표현이 두드러지는 세대들이 어째서 이렇게 아슴하게 자신을 돌려 세우는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눈치를 살피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깨름직 한 것이다. 그래서  ‘~ 같아요’ 보다는 ‘ ~ 보입니다’라는 표현이 훨씬 공손하면서도 분명한 화자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는 것이다.

 

  바로 앞 문장에서 ‘아슴하게’라고 썼지만 내가 가진 오래된 국어사전에는 ‘아슴하다’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자주 친숙하게 쓰고 있는 이 말은 아마도 ‘아슴푸레하다’ 가 어원이 될 것이다. 모양이나 상태가 흐릿하여 보일듯 말듯 잘 보이지 않거나 기억이 날듯 말듯한 상태, 또는 어떤 정서가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살이 젖듯 살포름할 때 우리는 곧잘 ‘아슴하다’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 ‘아슴푸레하다’의 용법을 취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슴하다’가 주는 느낌이 ‘아슴푸레하다’보다는 더 세밀하고 내밀한  정서를 포용하고 있음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 하이데거가 말하기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사유 작용이 개념의 확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때, 개념은 지시체와 지시대상이 존재하게 되는 연결고리인 것이고, 이 관계맺음으로부터 존재가 의식되는 것이므로 언어를 매개로 한 개념이 확장될수록 존재의 영역 또한 넓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끊임없이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외래어가 토착화되는 현실을 비춰 볼 때 우리 선조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우리 말을 보듬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닌 듯 싶어 마음이 서늘해진다. 우리 말과 글을 가다듬는 일이 바로 나의 과업이 아닌가! ‘아. 하고 되내일 때 짧은 영탄이 저절로 숨에 스며 나오고 ’슴‘ 할 때 안개가 숲속으로 잦아들어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아 저절로 그 뜻이 가슴에 저며든다. 이는 나의 개인적이고도 사소한 느낌일지는 모르지만, 이렇듯 우리 말에는 말 뜻과 신체적 리듬이 조화롭게 살아 숨쉬는 무진장한 보고가 숨어 있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서울문학인대회 기념문집< 우리말 우리글 사랑>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