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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눈물> 詩 몇 편 / 나호열

by 丹野 2009. 5. 31.

 

<눈물> 詩 몇 편  / 나호열

 

 

눈물나다   / 나호열


 

손잡을 듯

놓을 듯

산, 산

그리고 산

등 너머 노을이

울컥 쏟아내는

푸른

그림자

어쩌란 말이냐

맴도는 발자국은


먼 하늘

기러기 몇 줄

 

 

 

 

눈물  / 나호열

 

 

예쁜 꽃들 사이에

예쁘지 않은

눈물은

향기가 없으나

향기 속에

눈물을 가득 담은 나무 아래서

하루 종일

기도하는 법을 배웁니다


사랑하게 하소서


 

 

눈물이 시킨 일  / 나호열

 

한 구절씩 읽어가는 경전은 어디에서 끝날까

경전이 끝날 때쯤이면 무엇을 얻을까

하루가 지나면 하루가 지워지고

꿈을 세우면 또 하루를 못 견디게

허물어 버리는,

그러나

저 산을 억 만 년 끄떡없이 세우는 힘

바다를 하염없이 살아 요동치게 하는 힘

경전은 완성이 아니라

생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의 푸르름처럼

언제나 내 머리맡에 놓여져 있다


나는 다시 경전을 거꾸로 읽기 시작한다

사랑이 내게 시킨 일이다

 

 

 

 

눈물  / 나호열


 

길에도 허방다리가 있고

나락도 있다고 하여

고개 숙이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눈물은 

꽃 지고 잎 지고 나서야

익을대로 익는 씨앗처럼

고개를 숙여야 숨을 죽였다


길은 시작도 끝도 없어

우리는 길에서 나서 길에서 죽는다고

꿈에서나 배웠을까


문득 내가 한 자리에 멈추어 서 있을 때는

누군가 간절히 그리웁거나

서러웠을테지 


가슴에서 퍼올린 눈물이

그 길로부터 하염없이 굴러 내려가

강물이 되기를

그리하여 회귀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기를


그러나 나의 눈물은

강물이 되지 못하고

호수가 되지 못하고

씨앗이 되지 못하고 사라져 갔을 뿐

그러나 키 큰 절망 앞에  고개를 드니

비로소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없는 사람 그 얼마나 많으냐

하늘이 없는 사람에게 돋지 않는 별이

손바닥 만한 내 하늘에 떠 있다


오래 전 잃어버렸던 눈물이

익을대로 익어

따듯한 가슴으로 떨어질듯 하다

 

 

 

 

 

곰소 염전 / 나호열

 

 

누가 뿌린 눈물이기에 이렇게 아리도록 흰
어여쁨이냐
뿌리,잎,열매도 없이
발가벗은 온몸으로 승천하는 것이냐
언젠가 숙명으로 다가왔던 바다는 없고
세월에 절은
이 짠한 맛!

 

 

겨울 숲의 은유 / 나호열

 

살아남기 위하여
단 하나 남은 잎마저 떨구어 내는
나무들이 무섭다
저 혼신의 몸짓을 감싸는
차디찬 허공
슬픔을 잊기 위해서
더 큰 슬픔을 안아 들이는
눈물 없이는
봄을 기다릴 수 없다

 

 

 

장미를 사랑한 이유 / 나호열

 

 

꽃이었다고 여겨왔던 것이 잘못이었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이 고통이었다
슬픔이 깊으면 눈물이 된다
가시가 된다
눈물을 태워본 적이 있는가
한 철 불꽃으로 타오르는 
장미
불꽃 심연
겹겹이 싸인 꽃잎을 떼어내듯이
세월을 버리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처연히 옷을 벗는 그 앞에서 눈을 감는다
마음도, 몸도 다 타버리고 난 후
하늘을 향해 공손히 모은 두 손

나는 장미를 사랑한다

 

 

 

사라진 후에 / 나호열

 

내가 그리워지거든
촛불을 하나 켜 보게나
어둠을 태우며
또렷이 떠오르는
얼굴이 있거든
그대 서운한 가슴에 피는
꽃이라 이르고
사라진 후에
세계를
그대를
다시 생각해 보게나
허전할건가
눈물이 날건가
바람이 행여 잡히거든
그 줄을 타고 오른
별을 바라보게나
깊은 두레박이 하나 조용히 내려와
그대 가슴에 닿거든

 

 

 

자규의 노래 / 나호열

 

 

자규라 한다
피를 토하며 저 숲에서
우는 새
집을 얻지 못하여
어둠만 첩첩이 쌓는,
새벽이면
어떤 나무 가지 위에도
흔적조차 없는 눈물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울지 않는다
나의 울음으로 하여
또 누군가가 밤을 새워야 한다면
차라리 사랑잃고
목청끊어
그의 슬픔을 잠재워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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