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이미지 따라가기
조용미
숲에 오면 나는
공연히 눈물이 나는 것이다
주소가 없어
부쳐지지 못한 한뭉치 소포처럼
웅크린 저 소나무가
낯 익다
여기 꼼짝하지 말고 있어
날은 어두워지는데
총총걸음으로 사라져버린
엄마를 기다리다
혼자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소나무와 함께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바람에 맞서 뼈마디 굵어진 일이나
동구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한채
짧은 여름 키 세운 기다림의 저 눈길이
못내 그리운 것이다
나이는?
이름은?
우리는 아무에게도 접속되지 않은채
그렇게 눈시울만 붉게
서로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호열 [또 다시 숲에 와서] 일부
나호열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연상은 '나→숲→소나무→엄마→혼자인 나↔소나무'로 나타난다. 단순한 구조로 보여지는 듯 하지만 이 이미지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즉 '나와 소나무'는 하나면서 서로 바라보는 사이이고, '숲과 엄마'는 대응되는 관계에 있다. 나호열에게 있어 숲은 그리움으로 붉어진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왜냐하면 숲속에는 소나무가 있고 그리운 눈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인간적인 삶이란 "아무에게도 접속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삶은 현대인들에게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고, 굳이 나이나 이름을 알아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눈시울만 붉게/ 서로를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대인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는 말이다. 감성보다는 이성이 중요시되는 현대인의 삶은 어쩌면 철저한 외로움을 통해 숲의 존재와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후에야 "공연히 눈물이 나는" 이유를 "못내 그리운" 눈길의 의미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나호열의 시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의 연상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선명한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역동적인 삶을 만나기도 하고, 그리운 그 무언가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한 만남이 가능해질 때 시를 읽는 감동이 그만큼 커질 것이다.
[시와 산문 2006년] - 시의 이미지 따라가기-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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