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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안개, 여관, 물소리 / 심재휘

by 丹野 2009. 2. 14.

 

 

 

 

안개, 여관, 물소리

 

심재휘

 

수몰된 것들의 마음이 밤새

자욱하게 내려앉아 내가 든

안동역전 여관방에는 어디로 가는지

첫 기차 소리가 축축하였는데

미명 속으로  멀어지는 누군가의

젖은 발소리도 용서하고 싶었는데

창가에 놓아둔 선인장의 적의에 놀라

세수를 하고 텔레비전을 켜고 다시

침대에 누워 생각해 보면 저 기차

안동이 종착지일지도 모르겠다고

이 방 어딘가에 숨어 이따금

커튼을 흔드는 바람

그런데 바람도 뚫을 수 있을까

여관방에 안개처럼 기어든 새벽의 소리들은

모두 젖어 한 방울씩 떨어져 보는데

낡은 수도꼭지의 쉽게 잠기지 않는 생은

그러나 때가 낀 세면대에 잠시 머물다가

온수든 냉수든 길고 어두운 하수도관을

따라가면 그뿐 그러면 좁고 더러운 여관방에는

내 몸 사라지고 오래도록 물소리만 가득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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