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사원
송종찬
칠년 만에 수문이 열리고
수몰지구의 물이 반쯤 빠지자
강 한가운데 한 그루 나무가 드러났다
한바탕 속절없이 눈물을 방류한 뒤
눈동자를 바라보면
기다리던 사람 보이기나 하는 것인가
아무리 커도 절망은
나무의 키를 넘지 못한다는 듯,
흐른 물살에 못 이겨
마을이 사라지고 길의 지도가 지워진 뒤에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는
지나가던 물고기들의 집
기도를 올리던 사원이었을 것이다
꽃잎을 피울 수 없지만
스스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저 나무를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
아무리 슬픔이 길어도
강의 길이를 넘지 못한다는 듯
해오라기 한 마리
선 채로 입적한 등신불 위에 앉아
강 끝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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