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월사를 오르다가 비를 만났다
비를 만났다
혼자 오르는 산길에서 따가운 질책을 들었다
아무리 맞아도 멍이 들지 않는 목소리
무심히 지나치는 일층의 방 열쇠가
아직 내게 남아 있다.
그 방의 주인은 이미 자물쇠를 교체했을까
가끔은 열쇠로 열어보고 싶은 그 방
끈질기게 비는 나를 노크한다
밤늦도록 편지를 쓰고
전화를 기다리고
한 번 피고 다시는 피지 않는 난초의 몽우리에
가볍게 내려앉던 먼지들
온갖 풍상을 겪어낸 나무들
오래 전에 흘러간 물의 기억들
비를 만났다
수없이 복제되는 열쇠들
그러나 젖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내가 열쇠를 버리지 않는 한
그 방에는 당신의 첫 편지가 있다
눈 내리는 오후가 남아 있다
그 방에는 늘 푸른 소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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